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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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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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도 제도에 있고 터크스와 케이커스 군도로 구성되는 영국령의 제도다. 수도는 콕번타운(Cockburn Town)이이다.
2. 역사
기원전에 원주민 아라와크 족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스페인인에 의해 발견되었을 때는 무인도였다. 제도의 발견은 149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발견하였다는 설이 있지만 1512년의 후안 폰세 데 레온(Juan Ponce de León)이 발견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 스페인은 이 섬을 프랑스에 팔았고 시간이 흘러 영국으로 건너와 있었는데 스페인 선박을 습격하기 위한 해적 소굴로 이용한 것 이외에는 거의 무인도 상태였다. 1681년 버뮤다에서 소금 채취를 하던 영국인들이 채굴이 쉬운 그랜드 터크 섬에 정착하게 되면서 영국의 식민지화가 진행되었다. 1780년대에는 미국인들이 노예를 데리고 면화 재배를 시작했지만 태풍 피해로 1820년에 동행하고 있던 노예를 두고 떠나버렸다. 남겨진 노예는 고기를 채집해 생활했고 현재 대부분의 섬 주민들은 그들의 후손이다. 1799년 영국령의 바하마에 속했지만 이후에는 자메이카에 속했다. 1962년 자메이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혼자 영국 직할령이 되었고 1965년 다시 바하마에 편입되었으나 1973년 바하마의 독립으로 두 제도는 분리되어 총독을 두게 되었다. 1982년 독립 결정이 나왔지만 이후 취소되고 현재는 영국령이다.
마이클 미시크(Michael Misick) 총리의 부정 축재 의혹으로 2009년 3월 영국 총리의 조언에 따라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추밀원령을 발동해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의 헌법 중 자치 정부에 대한 조항을 잠정적으로 중지하고 영국 본국에서 파견된 총독의 직접 통치를 실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미시크 총리 사임 후임으로는 야당의 윌리엄스가 거론되었으나 8월에 추밀원령이 발효되면서 총독의 직접 통치 체제가 출범했다. 2012년 11월 9일 의회 선거 후 자치 제도를 회복했다.
3. 지리
바하마의 남쪽 40km에 위치해 있다. 크게 터크스와 케이커스로 나뉘고 40여개의 석회암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8개의 섬에 사람이 살고 있다. 많은 산호초가 있는 평탄한 모양의 섬으로 나무와 표토가 거의 없고 갯벌도 적다.
4. 경제
과거에는 어업과 소금, 해면 동물, 대마의 수출이 주된 산업이었고 현재는 관광과 해외 금융으로 번영하고 있다.
5. 주민
흑인이 88%를 차지하고. 백인도 조금 있다. 기술을 가진 주민들의 대부분은 바하마에서 일을 찾는다. 아이티에서 온 아이티인 난민도 있지만 사회의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다.
공용어는 영어이지만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온 이주민들의 영향으로 아이티 크레올어, 스페인어도 이주민들 사이에서 사용된다.
종교는 개신교가 대부분으로 침례교가 41%, 감리교가 19%, 영국 성공회가 18%를 차지하고 있다.
6. 기타
프로비덴시얼스 섬 인근에는 스스로 돌고래의 무리에서 떨어져 사람과 교류할 수 있게 된 야생 돌고래 조조가 살고 있다. 자연주의자 딘 버날과 교류를 15년동안 이어왔다. 2006년에 관련 동영상을 63빌딩 아이맥스에서 상영한 적도 있었다.[2] 그리고 1990년 6월 케이커스 제도의 북부, 중부, 동부가 람사 협약의 습지로 지정되었다.
2013년 12월 부탄, 산마리노와 함께 FIFA 랭킹 최하위였다. 2014년 7월에 꼴찌를 탈출했다.
캐나다 정부와는 관계가 매우 좋은 편이고 캐나다의 합병 이야기가 근 100년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2003년에 실시한 선호도 조사에서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국민의 60% 정도가 캐나다와 합병하는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